나는 싸이월드에 중독된 싸이홀릭이었다.
매일 아침 충혈된 눈과 후끈거리는 머리를 쥐어짜며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싸이월드란 늪에 빠지고 난 후 드러난 다른 증세들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난 심각한 노출증과 스토커 기질을 보임으로써 진정한 싸이홀릭이 되어버렸다. 싸이월드에 미쳤을 당시나의 경험과 싸이홀릭 회복 기간동안 배운 점들을 나누고자 한다.
내가 싸이월드에 발을 딛게 된 계기는 친구들의 미니 홈페이지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친구들이 싸이 폐인이 되어 가는 것을 목격하며, 난 절대로 내 미니 홈페이지를 시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자신들과 같은 싸이홀릭으로 만들어 보려고 끊임없이 방명록에 유혹의 글을 남기는 친구들을 뿌리칠 수 있을 꺼라 믿었던 나. 그런 내가 결국에는 싸이 폐인이 되어버렸다.
관리도 하지도 않은 내 미니 홈페이지의 방문자 수가 차츰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숫자를 무시해 버리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그 방문자 수를 늘리고 싶다는 욕망이 커져만 갔고 난 내 '인기관리'를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 숫자는 내 미니 홈페이지를 열게 될 이유이자 핑계가 된 셈이다.
프로필, 다이어리, 미니룸, 앨범, 게시판, 그리고 방명록 등 이 모든 게 공짜였다. 난 내 작은 집 (미니 홈)을 꾸미고 싸이 폐인으로써 자리만 잡으면 된다. 미니룸은 빈 방이었고, 그 안에 있는 디지털 인형 미니미는 사용자를 상징하는 말 그대로 '작은 나'였다. 즉 사용자의 축소형이었다. 미니미는 감정, 얼굴, 의상, 동작 조절이 가능했고, 난 '작은 나'를 꾸미는 데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미미나 바비 인형을 갖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10년이 더 지난 오늘 미니미가 나의 새로운 단짝이 되어버리다니!
나만 미니미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걸 싸이 폐인들은 잘 알 것이다. 내가 진정한 싸이 폐인 무리들을 만나게 된 것은 싸이월드만의 독특한 인맥 관리 방법인 '일촌 맺기'를 통해서다. 일촌은 두 측 모두가 신청과 수락의 단계를 걸쳐 동의를 해야 성립되는 관계이다.
나의 일촌 목록이 늘어날수록 잠재되어있던 싸이월드의 압박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원만한 일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촌들의 미니 홈페이지를 순회해야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긴 일촌 목록 중에 나와 정말 친밀한 존재들은 몇 되지 않았다.
이런 가식적인 행동이 통신 사교 그룹에서는 잦은 일이다. 실제로는 평생 못 봐도 살 수 있을 것으면서 통신상에서는 없으면 죽고 못 살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는 말이다. 정치적 동기일 수도 있고 단순히 발을 넓히려는 의도로 볼 수도 있다. 싸이월드는 왜 '지난달 나를 방문하지 않은 일촌들' 목록을 만들었는지, 그 블랙리스트에 있고 싶지 않아서라도 난 가식적인 관계를 싸이월드를 통해 지속해왔다. 사이좋은 사람들의 싸이월드라고 했던가? 사이좋게 지내자는 목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갈수록 어쩔 수 없이 압력에 의해 '일촌 관리'를 하는 꼴이 되었다.
나처럼 외국에서 유학중이거나 거주 중인 이들은 값비싼 국제 전화비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꺼라 믿고 반가운 마음에 싸이월드를 시작했을 것이다. 태평양 건너에 있으면서도 싸이월드가 있는 한 나는 한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싸이월드는 새로운 활동공간이었으며 국가 간의 선이 구별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한 무리에 속해 있는 느낌이었다. 외국에 사는 이, 한국에 사는 이 따로 분간할 것 없이 우리는 하나로 통했다. 싸이홀릭들 또는 싸이 폐인들. 싸이월드는 저렴하게 이 싸이 폐인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였다.
나의 친구들은 싸이월드에서는 나보다 "선배"였고, 그들의 미니룸이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들의 화려한 벽지, 아기자기한 가구와 깜찍한 애완동물 등등. 싸이 초심자인 나로서는 동경할 수밖에 없는 대상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방문자 수도 나와는 비교될 수 없는 거대한 숫자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야망이 발동했고 나는 무심코 내 발로 싸이홀릭이란 블랙홀로 뛰어 들어갔다.
싸이홀릭이 되어버린 나는 무의식적으로 높은 방문자 수는 높은 인기도를 상징한다고 믿게 되었고, 미니룸의 멋진 정도 또한 방문자 수와 비례한다고 생각하였다. 다른 모든 것을 제공하지만 꾸미기만은 미니룸 주인의 의무였고, 그 의무에 충실하는 것이 싸이월드의 법칙인 것이다. 내 미니 홈페이지는 미니미와 무료로 제공되는 벽지 달랑 한 장이었다. 여기가 도토리를 갈망하게 된 시초다.
도토리는 싸이월드의 모든 디지털 물건들을 살 수 있는 사이버 돈으로 싸이월드의 주요 수입이다. 도토리 한 개당 100원이며, 신용카드 또는 휴대폰 결제 등의 방법으로 구입할 수 있다. 진정한 싸이홀릭은 쇼핑중독자의 단계도 거쳐 간다.
어느 샌가 도토리와 도토리로 살 물건들에 대한 환상이 내 머리에 들어 앉았다. 싸이월드사의 우수한 창조성은 돈의 가치를 도토리라는 무해한 물건에 대입함으로써 소비자에게 금전에 관한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었다. 분명 나는 돈은 쓰고 있는데, 그 도토리를 이용하면 돈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게된다.
내가 도토리를 써가면서 친구들에게 선물을 할 때에 돈 낭비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관대하다고 느껴졌었다면 좀 더 근접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조선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이동형 싸이월드 본부장은 "세상살이란 남에게 베푸는 만큼 주는" 것이며 이것을 "싸이월드의 정신" 이라고 하였다.
이 모든 게 대인관계 유지에 있어서 이상적인 방법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도토리 없이는 이러한 관계 성립이 불가능하단 것을 보면 이러한 관계 순리에 대해 의문이 간다. 받은 선물의 수가 미니 홈페이지 메인 페이지에 디스플레이 된다는 것 자체가 선물 거래를 촉진시키기 위함이 아닌가? 겉으로는 건전해 보이는 이 관계가 결국은 싸이월드의 수입을 늘려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싸이월드 사용자들이 싸이홀릭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사용자의 인기도가 메인 페이지에 진열되어있기 때문이다. 미니 홈페이지에 전시되어있는 막대 그래프는 밤 낮 가릴 것 없이 도토리에 대한 갈망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막대는 각각 에로틱, 페이머스, 프랜들리, 카르마 그리고 카인드로 되어있다. 싸이월드측은 한국인들은 승부욕이 강하고 과시하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뚫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이 점을 노리고 메인 페이지를 인기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로 장식한 것이다.
페이머스는 미니 홈페이지에 10명이 방문했을 때 한 칸씩 올라간다. 에로틱, 프랜들리, 카르마 그리고 카인드는 선물을 주고받을 때에 올라간다. 다만 이러한 포인트 인상은 값비싼 선물들일 때에만 이루어진다. 싸이월드는 이렇게 해서 더 많은 방문자들과 도토리를 얻어내는 것이다.
싸이월드가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싸이월드가 다른 홈페이지 서비스 업체들을 능가하고 '뜰' 수 있었던 이유는 전성기를 즐기던 프리챌이 과감하게 유료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싸이월드는 이 기회를 타서 평생 무료로 운영하겠다고 약속하며 나와 같은 프리챌 사용자들을 끌어들인 셈이다.
싸이월드가 2001년 미니홈페이지를 선보였을 때 1백만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결정적인 회원 확장은 2003년 말 프리챌이 유료화 되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2004년 7월 싸이월드는 800만명의 회원을 기록했다.
유료화가 못마땅해서 프리챌을 버린 나 같은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싸이월드에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한다니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0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스킨을 도토리 20개 내고 살 때 나는 2000원을 순식간에 사용한다. 그뿐인가? 유통기간이 지나면 난 또 다른 스킨 쇼핑을 하느라 바쁘다. 현재 싸이월드의 일일수익은 7천만원에서 1억3천만원이다. 즉, 싸이홀릭들이 하루에 100만개의 도토리를 구입한다는 뜻이다.
싸이월드의 성공은 한국 닷컴 기업이 인정한다. 싸이월드 창설자 이동형은 서비스 개선을 위한 자금 부족으로 대담하게 자신의 회사를 SK 커뮤니케이션즈에 넘겼다. SK 커뮤니케이션즈는 싸이월드와 네이트닷컴을 인수함으로써 큰 이익을 수확했다.
네이트닷컴은 SK가 두 회사를 합병시킨 후 3위를 차지했다. 싸이월드의 수입 역시 60%나 상승하였고 싸이월드의 열기는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요새는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를 물어보는 대신 "싸이해요?" 라고 물어보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SK는 휴대폰으로도 미니 홈페이지 확인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언제 어디서든지 싸이월드를 즐길 수 있게 하여 싸이홀릭의 중독성을 한층 더 높인 셈이다.
싸이월드는 '사람 찾기'라는 기능을 통해 세력 범위를 확장했다. 싸이월드 사용자라면 누구나 이름, 성별과 생일 또는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여 다른 싸이월드 사용자를 찾을 수 있는 기능을 도입했다. 이 방법은 그동안 연락이 끊겼던 많은 사람들을 다시 이어주기도 한다.
한 주부(29)는 "결혼하면서 연락이 되지 않았던 친구들과 다시 연락이 되어 좋다"고 말했다.
반면에 이 도구를 이용해 스토킹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 단순히 홍보하기 위해 사람을 찾아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로 초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회사측에서는 이것을 이용해 직원들의 미니 홈페이지를 찾아내어 훔쳐보는 경우도 있다. 통신 네트워크 사용자들이라면 너무 자유스럽게 말했다가다 봉변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싸이월드는 순식간에 사용자들을 싸이홀릭으로 만들어버린다. 싸이월드 사용자 이름에 클릭 하는 순간 몇 시간동안 싸이월드를 떠도는 싸이 폐인이 된다.
늦은 밤까지 "조그만 더"하다가 해뜨는 것을 보고 나서야 눈을 붙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남의 미니 홈페이지야 거의 순간이동 하다시피 방문할 수 있지만 방명록 남기고, 리플 달린 것보고, 또 사진까지 훔쳐보다 보면 날샌다.
게다가 일촌들 또는 아는 사람 홈페이지 사진첩에만 가면 모르지만 낯이 익은 또는 매력적인 사람을 발견한 즉시 날 새는 일은 보장된 일이다. 그 사람들 미니 홈페이지 훔쳐보고 또 다른 미니 홈페이지로 껑충 껑충 건너뛰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다.
내가 진정한 싸이홀릭이 된 후, 헤어진 남자친구의 미니 홈페이지를 들락날락거리는 일은 거의 내 하루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거의 스토킹으로 끝났다.
싸이월드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을 사이버 상에서 가능하게 한다. 옛 남자친구와 멀리 사는데다가 추적과 뒷조사할 때에 투자해야할 자금과 시간이 없었지만 싸이월드를 내 개인 스파이로 고용하여 쉽게 그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헤어진 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의 미니 홈페이지를 드나들면서 그에 대한 세세한 정보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아마도 그의 방명록에 친구들로부터 남겨진 새로운 여자친구에 대한 축하 메시지를 보지 못했다면 난 아직까지도 남몰래 그의 스토커로 남아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싸이월드의 심각성을 깨우치게 된 것은 사이버 세계가 현실과 오버랩 되고 있음을 느꼈을 때였다.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자신의 친구를 소개하였다. 소개받은 사람의 이름은 낯설지 않았고, 난 그 사람의 이름을 친구 방명록에서 기억한 것이다. 내 스토커 기질에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난 사실 싸이를 통해 그 사람의 친구가 누구인지도 그 사람이 어느 학교에 진학할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스토커 증세가 노출될까봐 조금 챙피하긴 했지만 난 "xxx 언니 아시죠?"라고 물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그쪽의 대답이었다.
"그쪽은 xyz 학교 나오셨죠? 제 친구 yyy 싸이에서 봤어요"
우리는 갓 만난 사이었지만 서로의 개인적인 정보를 거의 뚫고 있던 셈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싸이 폐인이 된 시점부터는 자신의 스토커 기질에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 상대방 또한 싸이홀릭일 가능성이 높고 그 상대방은 싸이홀릭의 또 하나의 특징, 노출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싸이홀릭은 남을 훔쳐보는 것만큼이나 은근히 남들도 자신을 훔쳐보고 있길 바란다.
한 29세 남자는 이러한 특징을 이용해 여자친구에게 대쉬했다고 한다. 관심 있는 여자가 자신의 싸이월드에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미니 홈페이지를 멋있게 꾸미고 자신의 멋진 이미지를 부각시켜 결국에는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내게 있어 싸이월드는 내가 현실보다 더 많이 드나드는 그런 공간이 되어버렸다. 사이버 세계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싸이월드를 통해 남들에게 내 자신을 홍보함으로써 얻은 것이라고는 충혈된 눈과 고통스러운 두통이었다.
나는 더 이상 사이버 세계에 존재하는 '나'에 대한 시선과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은 "진짜 나" 가 아니기에…. 여전히 나는 싸이월드에 가고 몇몇 친구들은 내 싸이월드에 놀러온다. 나는 아직 완전 치유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한 기업이 나의 일상생활을 운영하도록 지켜보고 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