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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른즈음에..(46109)
    Articles 2006. 4. 20. 07:35
    내가 서른이 되던 해 생일날 읽었던 글이다.
    여기 퍼다 놓는다.

    스무 살은 좋은 나이다. 장미빛 뺨, 붉은 입술,
    그리고 유연한 무릎으로 사는 나이가 스무 살이다.

    이 나이는 한 인간이 비로소 세상에 나와,
    세상과 섞이고 부딪치면서 ‘사람’이 되는 때다.

    바깥 세상과 수없이 충돌하는 스무 살 젊은이는
    종종 어수선하고 불안해 보인다.

    스물의 젊은이들이 바깥 세상과 섞이면서 일으키는 마찰열은
    간혹 시로, 음악으로, 간혹 짙은 낭패감으로,
    간혹 몸과 마음의 시위로 분화하기도 한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책을 손에 든 채 분신한 것도 스물 남짓이었고,
    서태지가 온 나라를 뒤흔든 것도 스물 언저리였다.

    스무 살의 젊은이가 지니는 들뜬 열기와 어설픈 치기,
    무제한의 희망, 무모한 대담성….
    그러나 그 무엇도 스무 살의 찬란함을 불식시키지는 못한다.

    그런가 하면 서른 살은,
    깎아먹은 제 꿈의 높이로 세월을 가늠하는 나이다.

    또 꿈조차 꿀 수 없는 고단한 사람과
    그저 꿈만 높은 이들이 어울리는 그런 나이가 서른 살이다.

    어떤 이에게 서른은 단조롭게 길기만 하고,
    어떤 이에게 서른은 롤러코스터의 요동이 느껴진다.

    서른 살의 사람은 이제 세상에는 모래사막과 진창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인생에는 헝클어진 머리와 거친 손이 있다는 것을 안다.

    불행한 영웅도 있고 훌륭한 바보도 있으며
    뻔뻔스러운 희생자도 있다는 것을 안다.
    들에 피는 꽃도 있고, 무덤 위에 피는 꽃도 있다는 것을 안다.

    어떤 의미에서 서른은,
    참으로 서성거려지는 나이인지도 모른다.

    울울한 청춘의 수림에 머물러도 되는 건지,
    이제 중년의 조락에 발 담궈야 하는지,
    행복을 위해 자아만을 탐닉하고 살 것인지,
    한 뼘의 땅에 뿌리내려 살아야 하는지,
    경계 위에서 자꾸 서성이게 된다.

    정착하려는 욕망과 떠나려는 욕망.
    잉게보르그 바하만도 소설 ‘삼십세’에서 그것을 이야기했다.

    낡고 정든 모든 것들을 일소하고 익명의 몸으로 로마를 향해 떠나느냐,
    아니면 하나의 의무를 찾아 한 그루의 나무를 심거나 어린애를 만드느냐,
    하고 말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한 뼘의 땅에 뿌리내리는 선택을 할 것이고,
    또 그러한 선택을 한다.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가 평생의 반려라고 스스로를 위무하며
    결혼을 하고, 패키지 여행상품처럼 아이를 낳는다.

    누군가는 직장에서 승진을 하고,
    누군가는 하루 하루를 연명하듯 산다.

    누군가는 가느다란 단백질 덩어리가 두피를 벗어남에 불안해하고,
    누군가는 새털같이 많은 나날을 부부싸움으로 기운 빼며 산다.

    누군가는 뒤늦은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누군가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추앙받기도 한다.

    누군가는 아이가 낮잠 든 동안 거실을 서성대고,
    또 누군가는 인형의 드레스처럼 온 집안을 레이스 장식으로 치장하느라 분주하다.

    누군가는 분유 얼룩이나 아이의 묽은 침 따위가 떨어져
    눈물로 얼룩진 것 같은 편지를 어설픈 첫사랑에게 보내며 하루를 산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고, 무엇이든 되려던 젊은이는 이제 없다.
    다만 주어진 하나의 생을 살고,
    주어진 하나의 자아를 소비하기만 하는 ‘사람’이 남았다.

    그래서 시인 강은교는 서른이라는 나이를
    ‘새장 문을 열어줘도 더이상 날아가지 못하는 새’에 비유했다.

    시인 최승자는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라고 했다.

    이 나이에 시인 기형도는 죽음을 음유하다가
    어느 저녁 종로의 차디찬 극장 객석에 앉은 채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서른이라는 나이가
    단지 후회와 시큰거림으로만 채워져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서른을 넘기면서 사람들은 나이라는 것에 무덤덤해지고 마음에 평안을 얻는다.
    그건 한 뼘의 땅에 정착한 것에 대한 신의 보상일 수도 있다.
    아니,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이 평안은 삶의 유일한 진실인
    ‘완전한 것,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데서 오는 여유일 것이다.

    자신이 한발 한발 내딛으며 살아온 나이는 곧 시간이고,
    그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도리어 시간의 흐름을 즐기고
    자신의 변화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제 내 앞에도 서른 살의 강이 흐른다.
    강 너머엔 생존의 냄새 물씬 풍기는 여자의 세계가 있고,
    21세기가 있으며, 지금보다 더 살벌한 갖가지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 생소한 나이를 편안한 마음으로 맞고자 노력할 것이다.
    최승자의 표현대로 서른 살의 강 앞에서 ‘오 행복 행복 행복한 항복’이다.

    하루에 900㎞씩 봄이 오고 있고,
    내게도 서른 살이 가까워 보인다.

    서른에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은
    가슴에 더 독한 가시하나 품고 상처를 자르듯
    갈매나무의 추억을 자르고 새 살을 돋게 하는 것일 게다.

    진정 그 가시의 독을 품어낼 줄 아는 자만이
    서른이라는 광활한 대지 위에 자신의 획을 그을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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