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인 사회의 공공연한 문제였나 보다.
나는 역시 edge에 있지 아니하다.standard였던것이다.
이사회의 문제의..중심에 우뚝(?) 주저 앉아 있었던 것이다.
흐믓..--;;
혼기 놓친 자녀둔 부모들
‘동병상련’단체 만들어
내년초 맞선 이벤트 준비
엄마들이 나섰다.<이주현 기자>
아들·딸 천생배필 찾아 생면부지의 부모들이 이마를 맞대고 모여 앉은 것이다. 이들의 한결 같은 소망은 오직 하나. 이제 달랑 달력 2장 남겨놓은 올해가 가기 전 마땅한 며느릿감, 사윗감 하나 물색해 자녀 옆에 짝 지워 앉히는 것이다.
이런 절실한 모정이, 부정이 의기투합 뭉쳐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냈다. 이름하여 ‘화로’(Faro·대표 앤젤라 박). 스패니시로 ‘등대’를 뜻하는 이름처럼 혼기 놓친 자녀들의 혼사문제에 방향타를 잡아주려는 모임이다.
지난 8일 다우니 인근 메이우드에 위치한 한 데이케어 센터.
오후 6시가 넘어서면서 전국적으로 악명 높은 5번 프리웨이 교통체증을 뚫고 20여명의 부모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기대반, 설렘 반으로 문을 밀고 들어온 이들은 처음엔 어색함으로 정적이 감돌았지만 ‘아드님이세요? 따님이세요?’라는 옆자리 동지(?)의 말 한마디에 단번에 표정이 환해지며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낸다.
“딸이에요. 이제 서른 하나인데 공부하다 시기를 놓쳤어요. 대학교 가면 생기겠지 했는데, 대학 땐 공부하느라 연애 한번 못하고 졸업 후에도 변호사 시험 준비하느라, 합격한 뒤엔 로펌에서 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일하느라 또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하고 있어요. 나라도 나서야지, 이러다가 평생 못 가지 싶어서요.”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맞아요, 맞아요’를 연발하는 부모들,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니구나’하는 깊은 연대의 웃음이 퍼져나갔다.
참석자들은 이구동성 “아이들 혼사문제에 부모가 나서는 게 언뜻 치맛바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닥치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며 “자녀들 또한 나이가 들면서 한인과 결혼하고 싶어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할지를 몰라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여기에 이민사회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부모로서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하는 자책과 반성도 이어졌다.
이날 모임에 남편과 함께 참석한 박태전씨는 “아들이 지금까지 타인종 여자 친구를 몇번 데려온 적 있었다”며 “그때마다 한국인 며느리를 봐야 한다면 무조건 반대한 게 이제 와서 너무 후회스럽고 아들에게도 미안하다”고 털어놓는다.
이야기가 무르익으면서 참석자들은 ‘타주 친구들은 한인이 많은 남가주에 사니 짝 찾기도 쉽지 않겠냐’며 부러워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도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이제 서른이 된 딸을 두고 있다는 김형남씨는 “1.5세 자녀들은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이민 온 배우자여야만 정서적, 문화적으로 유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결혼의 다른 조건을 맞추기도 쉽지 않은데 여기에 이민 온 시기라는 또 하나의 조건이 존재하다보니 결혼이 더 힘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이날 참석자들 중 가장 눈길을 끈 이들은 김동희·명숙씨 부부.
이제 겨우(?) 24세, 26세된 남매를 두고 있는 김씨 부부는 “애들이 아직 나이가 많진 않지만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미리미리 애들 혼사문제를 공부하기 위해 이 모임에 참석했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 날 참석자들은 첫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사진을 가지고 와 신상명세를 작성해 발표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는 등 자녀 짝 찾기를 위한 열기가 뜨거웠다. 3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모임에서 이들은 한 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기로 하고, 내년 연초엔 자녀들을 위한 만남의 이벤트도 계획했다.
이날 모임을 주선한 앤젤라 박씨는 “부모들이 서로 대화하고 친해지면서 자녀들의 배우자를 찾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호응이 크다”며 “모임이 알려지면서 워싱턴, 시카고, 애리조나 등 타주에서까지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9시가 넘어서야 이 ‘뜨거운’ 모임은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참석자들은 “얼마나 결혼이 성사될지는 몰라도 같은 처지에 부모들과 푸념이라도 하니 속이 확 뚫리는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이민 한 세기를 넘어서면서 처음 시도되는 ‘아들·딸 시집 장가보내기’라는 조금은 생소한, 그러나 절박한 ‘시민운동’이 이렇게 그 첫 페이지를 써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