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이다.. 같은 느낌을 갖는 사람의 글을 접한다는건..
내가 미치지만은 안았다는것을 보여주는것 같아서 반갑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공유하면서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 가는
우리 기독교 인들을 보면 안타깝다. 즉.. 카리스마 있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우르르 왔다 갔다 하는 신앙의 일관성 없음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저자는 "얄팍한 상업주의 출판문화를 이끌어 가는 기독교출판계에 보내는 공개항의서" 라고 했지만 어쩌면 이건 기독교 저면에 깔린 사고 방식이라고 볼수 있을것 같다.
1. 「다니엘 학습법」과 두 번 죽는 다니엘
「다니엘 학습법」(김동환, 규장)이라는 책에 대해 무척이나 분개하던 목사님이 계셨다. 책 제목이 주는 선입견 때문에 읽어보지도 나도 처음에는 함께 동조했다. 그러나 재미 삼아 읽어본 결과 내 선입견과는 다르게 이 책이 흔히 생각하듯 단지 공부 잘하게 돕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공부하라는 이야기는 뒷전이고 기도했냐, 성경 읽었느냐, 은혜는 많이 받았느냐고 물으시는" 신앙의 어머니를 둔 덕분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믿음의 심정으로 공부한 어느 전도사님의 간증이었다. 신앙에는 별 관심이 없어도 일단 공부 잘하고, 출세하면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라는 흔한 기독교 학부모들의 상식을 여지없이 질타하며 모든 지혜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고 다시 한 번 선언한다. 물론 사이사이 김동환 전도사의 본심과는 다르게 일류병에 부채질할 만한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대체적으로 건전하고, 꿈을 잃은 젊은이들에게 도전의 정신을 줄만하다고 일단 생각했다.
그러나 책의 뒷날개에 소개된 이른바 '다니엘 학습법 체험 소감문'이라는 걸 읽어보며 나는 아연실색했다. "대학합격의 비결이 '다니엘 학습법' 안에 고스란히!"(2002년 Y대학 새내기) "동네의 '짱'이 공부의 '짱'이 되다!"(고3) "인문계 고교에도 못 갈 뻔 했지만…"(고3) 등 출판사에 의해 이 책은 고스란히 공부 잘하는 비법을 전수하는 책으로 소개된다.
그러고 보면 2002년 8월부터 11월까지 기독교 출판계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킬 뿐 아니라 지금껏 상위 20위 권에 드는 주된 이유는 저자의 의도야 어떻든(물론 이것도 요즘 의심스럽지만) 이 책은 분명 어떻게든 성적향상과 명문대학 입학을 인생의 목표로 믿는 이 땅의 학생, 학부모들에게 하나님이라는 묘책을 통한 신비의 학습법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 추측을 뒷받침이나 하듯이 최근 베스트셀러를 잘 내는 김영사에서 「다니엘학습 실천법」이라는 책이 나왔다. 그리고 역시 이 책의 광고는 이렇게 소개한다. "궁금하셨죠? 입소문을 타고 30만 명이 이미 체험한 다니엘학습법. 국내 최고! 학년별, 학기별, 주별로 실천하는 100점 공략 150주 마스터플랜! 1억원 짜리 과외도 못 당한다! 서울대 수석졸업생의 특급노하우!…" 이 광고를 보며 나는 머리가 돌아버렸다. '이건 아닌데….' 그리고 이 글을 쓸 결심을 했다.
나는 아직도 김동환 전도사의 처음 순수했던 마음을 믿고 싶다. 그러나 이런 아류의 책들과 출판사의 상업성은 다니엘을 두 번 죽이는 짓이다. 그대들은 다니엘을 전세 냈나?
"입소문으로 전해져온 전설적인 출세 비결집 다니엘 기도법, 드디어 출간! 천한 유대 식민지 포로 출신으로 즐비한 각국의 영재들을 제치고 일약 바벨론, 메디아, 페르시아에 이르는 세계 대제국의 고위관료를 지내온 다니엘의 출세 비결 '다니엘식 기도법'. 그는 기도 한방으로 사자굴에서도 살아났다. 그 어려운 왕들의 꿈조차 다니엘식 기도만으로 확실하게 벗겨냈다. 젊은이들이여, 출세를 원하는가? 다니엘 기도법을 배우라!"
다니엘 시대에 이런 책이 출간되었다면 다니엘은 과연 어떻게 했을까? '다니엘이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일주일 동안 금식하며 가로되….'(교형생각)
2.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과 링컨 바로잡기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가장 존경하고 따르고 싶어하는 정치인으로 소개된 링컨. 이 링컨이 또 요즘 훌륭한 신앙인의 표본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나는 이런 성웅 이순신류의 (신앙)위인전기를 싫어한다. 어릴 때 성웅 이순신전을 읽어보면 그는 어려서부터 어른 몇 사람도 들지 못하는 망부석을 번쩍번쩍 들 뿐 아니라 정의감이 남달랐고, 오직 나라와 민족, 백성만을 생각하고 모함을 받아도 조금도 사사로이 개의치 않는 완전한 사람 그 자체였다.
역시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이하 '기도실 링컨')만 읽어보면 책표지 윗면에 소개된 대로 '링컨, 그는 하나님의 기준을 완벽하게 만족시킨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정직했고, 자신에게 불리할지라도 조금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힘도 바로 하나님께 대한 한결같은 신앙이었다.
그러나 사실이 정말 그럴까?
"나는 과거에도 그랬거니와 지금도 백인종과 흑인종간의 사회적, 정치적 평등을 초래하는 어떠한 방법에도 찬성하지 않는다. (…) 마찬가지로 나는 흑인들을 투표권자나 배심원으로 만든다든가 혹은 공직에 앉게 한다든가 또는 백인과 결혼하도록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다른 종족간에는 신체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두 종족은 영원히 사회 정치적으로 평등한 조건에서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미국의 역사」, 케네스 데이비스 지음)
이 말은 상원의원 선거에서 더글러스의 공격에 몰린 링컨이 자신을 변명하며 한 말이다. "현대 미국 기준에서 보면 링컨은 인종차별주의자라 할 수 있다. (…) 그는 자유주의자였고, 그 시대의 좀 속된 표현을 빌면 '검둥이 애호자'였다. 위대한 대통령이란 칭송을 받는 다른 대통령들처럼 링컨도 재임 중에 그의 위상이 크게 자랐다."(앞의 책)
나는 링컨이 본받을 만한 신앙인이요, 위대한 정치가라는 사실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훌륭한 신앙인이요, 위대한 정치가가 꼭 '흠도 티도 없고 모든 문제를 언제나 기도로만 풀어간 완전무결한 사람이다'고 말해야만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도실 링컨'을 읽으면 링컨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도덕교과서의 가상인물 영철이와 같이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청소년시절부터 보수교단에서 자란 나는 최근까지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의 신격화된 모습만 듣다가, 그들이 종교개혁 과정에서 보여준 무자비함과 잔인함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았을 때 내 신앙이 흔들렸던 적이 있다. 마치 루터와 칼빈의 무흠함을 믿어야만 종교개혁의 정당성을 믿을 수 있었던 듯이 말이다.
이 책은 작년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을 수상하고 12개월 연속 베스트 1위를 차지하고, 기독도서 전체 베스트셀러 순위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이 책이 그렇게 큰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 좀 슬펐다. 기독인의 독서 성향이 단순하고 피상적임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예상대로 곧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기도실 링컨'도 출판되어 종합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굳이 어린이 책이 따로 나와야 할 만큼 '기도실 링컨'이 장년의 수준에 맞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족이지만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도실에서 어떤 기도를 드리느냐가 더 중요한데, 우리는 흔히 그것을 무시한다. 따지고 보면 지금 온 세상을 힘의 정치로 몰아붙이는 부시 대통령도 내가 알기엔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3. 「야베스의 기도」와 겟세마네의 기도
▲기독교출판계의 상업주의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솔직히 나는 제법 인내심을 갖고 이 책을 읽었지만 결국 1/4 가량을 남겨둔 채 다 읽지 못했다. 그리고 도대체 이 책이 왜 그렇게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남겨야 했는지 허탈한 심정으로 결국 이해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건서적들이 그렇듯이 이 책도 굳이 말꼬투리를 잡기는 힘들다. 하나님을 굳게 믿고 크게 기도하여 응답 받으라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나. 그러나 내 심정을 한마디로 말하면 '믿음으로 기도하면 놀랍게 응답받는다'는 내용을 담은 다른 비슷한 책들을 뛰어넘을 만큼 대단한 책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글을 쓰기 위해 검색해 본 결과 내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를 얻고 있었다. 2001년 4월부터 2002년 5월까지 두 번의 2위를 제외하고는 줄곧 베스트 1위 자리를 넘겨주지 않았다. 좀더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이런 정도의 책이 이토록 인기를 끄는 것은 한국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비지성적이고 얄팍한 독서수준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아연실색할 것은 이 책의 인기를 바탕으로 따라나온 책 목록들이 줄잡아 8권이나 된다. 「꿈을 주는 야베스의 기도」, 「다시 쓰는 야베스의 기도」, 「묵상을 위한 야베스의 기도」, 「청소년을 위한 야베스의 기도」」, 「학령전 어린이를 위한 야베스의 기도」, 「어린이를 위한 야베스의 기도」, 「여성을 위한 야베스의 기도」, 「야베스의 축복원리」
이 정도쯤 되면 저자 브루스 윌킨슨은 야베스의 기도처럼(대상 4:9, 10) 그야말로 복에 복이 더하고, 지경이 무한정 넓어진 것 같다. 무엇이든 복에 복을 더하고, 지경이 무한정 넓어지기 원하며,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는 만사형통을 바라지 않을 자가 누구인가? 누구든 이민, 자살, 로또복권을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이 험난한 시대에 고난 없는 축복처럼 우리 마음을 즐겁게 하는 복음이 어디 있는가? 그렇다. 사실 우리 내면에는 십자가의 복음, 주님의 팔복이 아닌 야베스식 축복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고난주간을 지나면서 정작 우리가 배워야할 기도는 자기를 죽기까지 복종하도록 사력을 보이신 겟세마네의 기도가 아닌가 싶다. 아직도 짧은 내 경험에 의하면 인생과 신앙은 단답형이 아닌 것 같다. 기도하면 즉시 응답 받고, 예배드리면 언제나 은혜받는 게 아니고, 평생을 믿음으로 살았다고 좋은 열매가 맺히는 것도 아니더라.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해답이 아니라 그 시련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맺게 되는 관계요, 신뢰가 아닌가 싶다.
4. 유명 기독교출판사와 독자들에게 바라는 마음
나는 이른바 유명 기독교출판사들이 책 한 권을 만들어내는데 들인 열정과 정성에는 고개를 숙인다. 또한 기독교출판사라고 해서 상업성을 고려해선 안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출판사들은 미약한 기독교출판계에서 얼마나 두드러진 강자들인가. 그렇다면 이젠 흔히 말하는 인기 있고 쉽게 읽히는 분야와 저자들의 책보다는 대중적이지는 않아도 꼭 읽혀야 할 책들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규장출판사는 베스트셀러 제조사다. 나는 규장의 책들을 볼 때마다 "어쩌면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번번이 감탄하고 만다. 디자인, 구성과 편집에 이르기까지 깔끔하고 입맛에 맞는 세트요리를 먹는 것 같다. 그러나 규장의 책 가운데 상당수는 이른바 대형교회의 유명목사님들의 설교집이다. 아닌 말로 그 교회 성도들만 제대로 소화해도 기본제작비는 빠질만한 유명 목회자들의 전속무대다. 다 좋다. 그렇다면 이젠 소외된 기독교출판계의 사정도 좀 생각해 달라. 그 점은 물론 생명의말씀사와 이른바 베스트셀러를 내는 다른 유명 출판사에도 마찬가지다.
뭐하나 인기를 끈다 싶으면 금새 '어린이를 위한', '청소년을 위한' 등 온갖 아류들을 쏟아내서 큰 힘들이지 않고 그 좁은 기독교 독서시장을 석권하는데 그건 영세 출판사를 두 번 죽이는 행위가 아닌가. 난 이런 현상을 보면 "진짜", "원조", "할머니"를 앞세워 선전하는 국밥집이 연상된다. 이 글을 쓰면서 사실 저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다. 어쩌면 그 분들은 글 쓴 죄밖에 없다. 내 글이 틀림없이 그 분들에게 상처가 될 것임을 미리 사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독출판계의 상업주의는 반드시 고쳐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감히 글을 올리는 점을 양해 바란다.
2001년 전통적 신앙에 심각한 회의감을 안겨주는 「예수는 없다」(오강남, 현암사)라는 책은 온 국민들에게, 기독교출판사에서도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가 되었는데 그에 대항한다는 「예수는 사실이다」, 「예수는 있다」 같은 책들은 우리 끼리만의 신앙고백을 확인하는데 그쳤다. 우리끼리만 믿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변증이 우리만의 메아리에 그치는 이유는 세상사람들도 공감할 만한 논리력과 변증력을 갖춘 바울과 같은 기독인 필자가 부족한 때문이요, 또 그런 좋은 책들을(때론 인기가 적어 보여도) 사명감으로 내줄 만한 출판사가 부족한 때문이요, 또한 좋은 책을 알고 읽어줄 만한 독서인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구교형 목사. ⓒ뉴스앤조이
어느덧 한국 종교지형에서 종교 이탈률은 가장 높고, 종교 선호도는 가장 낮은 종교가 되어버린 한국기독교(<복음과상황> 2004년 2월호 참조). 그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이 언제나 교회 울타리 안에서 맴도는 우리 식의 이야기로 그치기 때문이다. 문을 닫아 걸고 우리들끼리만 은혜 받고, 우리들끼리만 경쟁하는 그런 '놀이'를 벗어나 이제 세상에 울림을 줄 수 있는 강력한 영적 지도력을 출판계와 기독지성들의 작은 변화로부터 기대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