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앞에만 서면
온몸이 불같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나를 태우고 녹이는
불이 어떤 불인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내게는 불에 타서 없어지는 것이
말할 수 없이
달콤한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온갖 감정에
되는 대로 몸을 맡기고
나 자신을 농락해 보기도 하고
추억을 외면한 채
미래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기도 했다.
.
.
.
.
나의 '열정'은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사랑에 빠진 남자였다.
나는 내 열정이
그날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마디 덧붙여야겠다.
나의 고통도 그날
바로 그날부터 시작되었다고 말이다.
아아 이것이
내가 알고 있던 아키였던 것이다.
어린아이들처럼
유치한 일기를 교환하고 있는 아키,
나를 소꿉친구처럼
'사쿠짱'이라고 부르는 아키.
너무 가까워서 미처 내게
어떤 존재인줄 몰랐던 그녀가
지금 한사람의 여자로 저기 서 있다.
마치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내던져 두었던 돌멩이 하나가
바라보는 각도를 달리하니
돌연 아름다운 광채를 발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
.
.
" 인생에는 실현되지 않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할아버지는 타이르듯이 말했다.
"실현된 것이라면
인간은 금방 잊어버리지.
그런데 실현되지 않은 것은
언제까지고 소중하게 가슴속에서 키워간다.
꿈이라든가 동경이라고 하는 것?모두 그래.
인생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피層프?않은 것에 대한
생각에 의해서 생겨나는게 아닐까?
실현되지 않은 것이 있다해도
아무 가치 없이 남겨지는 게 아니다.
아름다움으로서
사실은 이미 실현되어 있는 거란다."
기적 같은 건 쉽게 일어나지 않아.
우리들에게 일어난 기적은
단지 네가 혼자서 기다려 주었다는 거야.
마지막까지 냉정했던 너에게
난 뭐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가슴 속의 빈 공간을 채울수 있을까.
나는 과거를 뒤돌아 볼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해 기대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지 않으면 안돼.
"아오이", 너의 고독한 눈동자에
다시 한번 나를 찾을 수 있게 된다면
그 때 나는 너를...
사람이란 살아온 날들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소중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난 믿고 있다.
지나친 사랑은 때론 독이 된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
자신이 머물 곳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어...
.
.
.
.
'아가타 준세이' 그는 나의 전부였다.
그의 눈동자도,
그의 음성도,
불현듯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웃음진 얼굴도...
만약..어디선가 그가 죽는다면,
난 분명히 그의 죽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다하더라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해도....
.
.
.
.
첫번째는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입니다
작가 스스로 첫사랑은 창작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라고 말했을 정도로
자전적인 소설입니다.
등장인물들은 작가와 주위 사람들을
거의 그대로 형상화했고
여기 그려지는 사건 역시
실제사건을 기초로 했다고 합니다.
한 여자에 대한 부자의 사랑을 통해서
그것이 싸구려 연애담으로 전락하지 않고
소년인 블라디미르로 하여금
첫사랑의 미혹에서 벗어나 죽음의 관조를 통해
인간적 성숙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성장소설입니다.
두번째는 일본작가
카타야마 교이치의 소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입니다.
2001년에 발간된 후
처음에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이 소설에 감동받은 한 서점 직원이
직접 손으로 광고지를 만드는 정성을 보이며
점차 서점가의 화제가 되던 중
일본영화계의 아이돌인 시바사키 코우가
'울면서 단숨에 읽었다'는 멘트와 소개하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역사상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의
239만부라는 기록을 깨고
316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세번째는 역시 일본작가인
쓰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라는
두 남녀 작가가
각각 준세이외 아오이라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나눠 쓴 이중주입니다.
이 소설을 쓴 것을 계기로
두 작가가 실제 나눈 편지들을 모은
서간집인 <사람을 꽃보다 아름답게 하는 사랑>이 출간되었으며
이미 소개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더불어
영화로도 만들어 졌습니다.
20대 초 대학생 시절부터 열렬히
사랑해온 남녀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의 힘에 휘둘려
오해 끝에 헤어지게 됩니다.
그들은 헤어진 후에도 서로를 못 잊다가
나이 20세에 서로 약속했던
10년 후 30세가 되는 생일에
연인들의 성지라는
피렌체의 성당 꼭대기에서
서로 만나기로 합니다.
세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죠.
여러분들의 가슴 속에는
어떠한 첫사랑을 담고 계시는지요?
.
.
.
.
.
.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철저히 소외당할 때
정말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내가 도대체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무슨 상처를 주었을까?
생각나더군요...
여러 사람들이...
그 중에 가장 뚜렷이 떠오르는
한 사람이
바로
제 첫사랑이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그때까지도 절 떠나간
그녀를 진심으로 축복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했던
내 집착과 욕망이
바로 가장
큰 죄가 아니었을까요?
제가 노래방에 가면
언제나 반드시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김광진의 "편지" 입니다.
전 처음으로 그 노래를 들었을 때
작사자는 정말로
상당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 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보아도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가오 "
저도 그녀를 그렇게 보낼 수 있었다면
그녀와 자신을 위해서도
참 좋은 일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哀와 悲의 차이가 뭘까요?
자신이 슬프다는 점에선 같겠지요
하지만 전 이게 아마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그 슬프게 하는 대상에게
도리어 그 대상이 존재했기에
감사한 마음마저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哀이고
그 슬프게 하는 대상이 슬픔을 주었기에
그 대상의 존재를 꺼리게 된다면
그것은 悲라고..
제 첫사랑은
제게 哀이지만
悲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은
그녀를 떠나보내고도
5년이나 흘러서입니다.
떠난 그녀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상처와 아픔을 준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전 그가 바로 부처가 아닐까 합니다.
김동리씨의 아내였던
작가 서영은씨가
최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 열정을 사랑이라 착각하면 안 된다.
열정은 욕망이고 욕망은 결핍의 다른 이름이다.
진정한 사랑은 나를 다 내려놓아 넘쳐서
주변을, 자기가 아닌 타인을 채우는 것이다."
" 옛날에는 한 사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은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나를 더 내려놓고 타인 속에서 죽어야 한다.
내게 사랑은 깨달음의 과정, 구도의 과정이었다."
" 사랑을 내가 만든 동사로 바꾸면
'치러내고 살아내야 한다'이다.
받아들이는 거다. 그러면 충만해지고 차고 넘친다.
사람들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난 이러니까 넌 이래야 한다'고 한다.
거기서 충돌과 상처가 생긴다.
충돌과 상처는 '나'라는 에고에 빠졌기 때문이다."
" 에고는 내가 어떠어떠하다는 '틀'이다.
삶은 물처럼 흐르는 거다.
에고는 흐르는 물 위에 프레임을 찍으려 하는 거다.
이건 왜곡이고 오해다."
인디언 말로
친구는
"내 슬픔을 등에 짊어지고 가는 자"라고 합니다.
그녀가 제게
힘들게 했다고 해도
그녀는 제게 친구였으니
그 몫은 당연히 제 몫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원래 정말 쓰라린 과거는
남에게 잘 말하지 않는 법입니다.
하기도 어렵고 떠올리기도 싫고
그러니 잠재의식 속에 늘 묻어둔다
그러다 언젠가 때가 되면
그것들이 기어나오기 시작합니다.
전 아픈 과거는 묻으려 들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할 때
그가 비로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굿윌헌팅>을 기억하시나요?
눈물 흘리는 윌(멧데이먼)을
숀 선생은 (로빈 윌리엄스) 끌어 안으며
이렇게 말하지요.
" 윌, 괜찮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
난 그 영화를 여러번 봤습니다만...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전 그 순간 구원 받은 건
윌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유년기의 의붓아버지에 의한 폭력과
월남전에서의 전우들의 죽음
그리고 喪妻했던
과거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던
그래서 MIT 교수인 친구보다도
재능이 있었어도
그 길을 걸어가지 못했던
숀 선생 그 역시
그 순간에 구원받은게 아닐까요?
사람은 불행한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히면
바로 저 앞에 행복으로 가는 기차가 있어도
감히 그 기차를 탈 엄두조차
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냥 자신이 계속 놓여져 있던
불행의 기억 속에
웅크리고 둥지를 틀려고 하지요.
도무지
행복했던 기억이 없으니
도대체 눈앞에 다가 온 그 행복이
기괴하고 두려워 보이는 겁니다 .
그리고 어두운 시절
자신 곁에 있던 존재들과
헤어지는 것 조차 두렵게 되죠.
감히 그 때가 다가와도
행복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그런 기억이 있었던 것 같군요.
전 제가 사랑했던 그녀도
그리고 저도
앞으로 그 두려움을
계속 극복해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러고 있을테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언젠가는 저도 그녀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아픈 기억들마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직한 어조로 들려줄 때가
오길 기다리겠습니다.
마치 고난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이
자신의 자서전에 쓴
아팠던 기억들 마저
때가 되면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이 되듯이 말입니다.
고해성사가
정신에 힘이 되듯이
자기고백 역시
마음에 힘을 주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키에르케고르의 경구를 끝으로
오늘 편지 마치겠습니다.
" 그대 인생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뒤를 돌아보라
하지만
그대 인생을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앞을 바라보라 "